바야흐로 이직의 계절(?)이다. 예년 같았으면 이제 중후반 즈음에 접어들기 시작할 때 이겠지만 corona-19 덕분(?)에 조금은 시기가 늦춰진 듯하다.

나는 지난 2월에 전 회사를 퇴사하고 한 달 동안의 기간을 거쳐 4월 초 현재 회사로 합류했다.
그 과정 속에 있었던 이야기를 풀어볼까 하여 그 첫 번째로 퇴사이야기부터 시작해본다.

1년 전

내가 있던 회사는 국내 대기업에서 분사하여 나온 작은 스타트업이었다. (입사 당시 인터뷰 때 본인들 입으로는 자회사가 아닌 별개 회사로 운영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아웃소싱을 통해 개발된 서비스였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개발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픈하고 인계 받아 서비스를 고도화 해 나가기 위해서 플랜을 잡고 개발팀을 세팅하려고 했는데 당연히(?) 채용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채용에 과연 관심이 있기는 했는지부터 의문이기는 했다.)

무튼 작년 여름, 그 과정에서 난데없이 사업 완수를 위해 개발팀을 본사의 SI 조직으로 전적시켜 본사 조직에서 팀을 빌딩하고 사업을 완수한 이후 다시 돌아오는 플랜을 통보 받았다.

본사 IT 조직과 위수탁계약을 맺고, 현 회사를 퇴사 처리하고, 본사 IT 조직으로 입사 후, 본사 IT 조직의 지시를 받아 업무를 진행하고, 사업 완수 목표를 달성하면 거기서 빌드한 팀과 함께 현재 회사로 돌아온다는 기이하고도 괴랄한 플랜이 개발자들의 동의와는 별개로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전적을 거부했고 돌아가는 상황을 보며 퇴사 카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기까지 했다.

언제 돌아오는지의 시점도 불명확하고, 거기서도 팀 빌딩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지, 돌아올 때 새로 합류한 팀원들은 돌아가지 않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사용자가 바뀌는 것인데 이 프로젝트만을 진행한다는 보장이 과연 있는지, 내부에서 고려하고 있던 인재 채용을 과연 고수하여 정말 적합하다 우리가 판단하는 사람을 팀원으로 채용할 수 있는지, 전적을 미동의 할 경우에 그 사람은 어떻게 되는지 그 어떠한 것도 명확하게 결정도 대안도 없이, 전적을 동의할 것인지 아니면 미동의하고 잔류할지 아니면 아예 퇴사를 선택할 것인지 기준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왜 겪어보지도 않고 선을 긋냐, 너무 극단적으로 갔다, 안된다는 가정은 일단 버리자 등등... 도무지 납득 할 수 없고 결국 아무 것도 확실히 하지 않고 그저 어떻게든 전적을 시키려 한다는 느낌만을 받게 했다.

나는 SI 업체를 갈 생각이 단 1도 없는 사람이고 빠르게 최신 기술들을 습득하고 성장해가려는 목표를 가진 사람인데, 본사 IT 조직은 SI/SM이고 레거시 환경이며 (심지어 Git도 사용하지 않는다) IDC에 물리 서버를 두는게 클라우드보다 좋다고 생각하는 곳에 과연 최신 기술을 도입하고 학습하고 싶어하며 그것으로 성장하고 싶어하는 이가 갈 이유가 1도 없지 않나...

그 과정 속에서 대표는 팀원들이 어느 회사 소속이든 그것은 자신의 관심 밖이고 어떻게든 사업이 완수 되기만 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기에 더 이상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굳히게 하고, 이미 퇴사를 마음 먹었다.

이후 해당 플랜이 이런 저런 이유로 다 무산되었기에 (결국은 정치 이슈였을 거다) 2020년 4~6월을 이직 프로세스 진행의 달로 잡고 플랜을 세우고 하나하나 실행에 옮겨가고 있었다.

연초에 통보된 갑작스런 폐업 통보

올해 초, 카더라 통신을 통해서 회사를 폐업하고 본사로 통합시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1월 말, 전 직원을 모아두고 소식을 전할게 있다고 하더니 회사를 폐업하고 본사로 합병하기로 했다며 빠르면 2월 초에 마무리 될 거라고 했다.

물론, 실제 폐업 절차 및 전적은 3월에 이루어졌다. 추측하기로는 그렇게 던지고 나니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라도 30일 전에 예고를 해야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30일 분의 통상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노동법 때문에 그렇게 진행한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심지어 본사로의 합병임에도 불구하고 "전적 동의서"를 받아 전적을 시키는 쪽으로 또 몰고 가더라.

당연히 나는 SI로 들어갈 생각도 없을 뿐더러, 이러한 짓을 하는 회사에 남아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전적 미동의로 선을 그었고 그렇게 2월까지만 근무하고 퇴사하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도 굉장히 코믹(?)했는데,

"빠르면 2월 말에 진행될 거다"까지만 이야기를 해 놓고는 진행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전달 받을 수 없었다. 그렇게 "소통"을 강조하시던 분이 정작 소통해야 할 때는 신경도 안쓰더라.

2월 초가 되었는데 어떻게 진행된다는 얘기도 없이 지지부진하게 끌고가더니, 어느날 전적 동의/미동의 결정을 위해 결정을 보류한 직원들과 본사 IT 조직과의 미팅이 진행되었었는데 나는 처음부터 미동의로 결정을 했기 때문에 일단 대표 면담을 먼저 진행하고 따로 미팅을 할 거라고 하더니 퇴사 때까지 단 한 번의 면담을 하지도 않았다. ㅎㅎ

어쨌든 이미 내 모든 플랜이 갑자기 다 망가진 상황이 되어놓아서 짜증과 화가 계속 되느라 상반기 플랜을 어떻게 변경해야 하는가를 두고 세웠던 목표를 수정하고 그 목표에 따른 상세 계획들을 수정해야 했기에 몇 가지 시나리오를 새로 세우고 가능한 플랜들을 세우느라 머리 속이 온통 뒤죽박죽이 되어 멘탈이 잡히지를 않았다.

그 와중에 또 3월 말 즈음에 이르러 남은 연차가 제법 되었었는데, 연차를 강제로 소진 시키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일이 없으니 남은 한 주를 연차 소진하여 쉬고 말일에 퇴사 처리하자며.

당연히 나는 그것이 노동법 상 불가능한 것임을 알고 있기에 회사가 일을 주지 않는 것은 나의 문제가 아니니 연차 소진을 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그럼 나와서 뭐할거냐부터 시작하여 그러면 퇴사일을 당기겠다는 등 (아니 그러면 연차가 없어서 회사에 나와 시간을 때워야만 하는 다른 직원들은 뭔데) 심지어 코로나 상황까지 가져와서는 내가 법을 잘못 알고 있는거라며 ㅎㅎ

어차피 4일치 연차라 이것가지고 노무사끼고 법정 다툼까지 가면서 스트레스 받고 싶지는 않아서 똥 밟은 셈치고 무시하기로 했는데, 이미 나는 노동부로부터 관련 답변을 받은 상태였고 굳이 코로나까지 가져다가 억지 소리로 이유를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한 것을 녹취자료로까지 가지고 있었다.

나는 이미 과거 권고사직 건으로 동료 직원들과 함께 사측과 각을 세우면서 노동법을 샅샅이 뒤져봤었고 관련 판례들을 찾아보는게 익숙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도 역시 관련 판례들도 이미 준비해 두었었다. 나를 법알못으로 취급하고 "원래" 이렇다 하면 내가 아... 그런가요? 하기를 바랬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언제나 예상을 벗어난 곳에 있는 사람이다.

무튼 마지막까지 굉장히 좋지 않은 경험을 남겼고, 아주 더러운 기분으로 남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번외

합병 이야기가 나오고나서 나는 100% 회사가 전적 동의서를 받으려고 시도할 것이다라고 이야기 했는데, 앞서 언급한 대로 실제로 그렇게 이루어졌다.

기존 판례 상 합병에 의해 근로관계가 승계되는 경우에는 계속근로년수 등 역시 포괄적으로 승계 되어야 하는 것인데, 이걸 피하려면 직원의 동의 — 즉 전적동의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으로 추측하고 있었다.

사측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 하며 퇴직금이며 전부 다 승계한다고 이야기 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내일채움공제 문제로 계속근로가 끊어지면 곤란한 직원이 있었는데 본사 직원과의 면담 시에 퇴사하고 재입사이기 때문에 계속 근로가 끊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하더라.

자신은 보장해 준다고 들었다고하여 본사측 담당자와 전회사 담당자가 통화하여 서로 달리 알고 있음을 확인하고 (아니 애초에 이게 달리 알고 있으면 안되는 것인데 말이지) 끊어지지 않도록 처리해 준것으로 아는데, 아마도 딴지 걸지 않은 다른 직원들은 고스란히 불이익을 끌어 안았을 거다.

최근 찌라시에서 또 대거 인원 감축에 대한 이야기도 돌았는데, 개인적으로 사실에 가까울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내가 당한 그 모든 과정을 생각해보면 말이다.

암튼 만나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