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내 블로그의 글을 무단으로 불펌해간 이들을 추적(?)하느라 이미지 리소스가 사용된 URL를 추적하고, 몇 가지 키워드로 검색을 하던 중에 2016년도에 H카페에 올렸던 글을 인용한 아티클 하나를 발견했다.

내가 올렸던 글은 접근성 진정이 올라온데에 대해 기쁨(?)을 표현한 글이었고, 해당 아티클은 이에 대해 접근성 타령을 하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다.

뭐 그 글을 저격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고, 일단 해당 글에 대한 결론만 내보자면 웹 퍼블리싱 업무에 대한 좁은 시선을 가지고 있기에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다만, 자신이 그 만큼 모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지는 모르겠지만.

역차별

웹 접근성 이슈가 대두되던 해부터 꾸준히 나온 이야기가 역차별이다.

이제는 이런 이야기가 없어졌을 줄 알았는데, 간간히 아직도 여기저기에서 왜 웹 접근성을 준수하자고 장애가 없는 이들이 역차별을 당해야 하느냐는 소리가 들려온다.

정말 역차별일까?

개인적으로 굉장히 궁금했던 것이, 웹 접근성을 준수하는데 정말로 장애가 없는 이들이 역차별을 당하느냐?라는 것이다.

솔직한 말로, 웹 접근성을 준수해서 장애가 없는 이들이 역차별을 받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참으로 궁금하다. 아무리 이런 저런 상상을 해 봐도 장애가 없는 이들이 차별받을 문제가 떠오르는 것이 1도 없다.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단 하나. 웹 접근성을 준수해서 웹을 만드는 사람이 힘들수 있다는 것.

만일, 그걸 두고 역차별이라고 말하는 것이라면... 참... 씁쓸할 뿐이다.

혹, 정말로 웹 접근성 준수로 인해 장애를 가지지 않은 이가 역차별을 당한 사례가 있다면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뇌피셜 속에서의 역차별 사례 말고.

갇힌 지식과 편협한 시각

혹자는 시각 장애인을 위한 페이지를 따로 만드는게 왜 차별이냐 그걸 차별로 두는게 꼬투리다라는 발언도 있는데, 이는 정말이지 "접근성"과 "장애"에 대한 이해가 없어도 너무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대체 사이트를 만든다고해서 그것이 정말로 동등한 수준의 정보를 제공할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시각 장애 외에 상지장애, 인지장애, 청각장애 등등 각 장애별로 대체 사이트를 만들어서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일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

내가 20대였을 때, 청각 장애인들과 어울린 적이 있었다. 하루는 다 같이 영화를 보러 갔는데 자막이 없으면 대사를 들을 수 없으니 자막이 있는 외화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를 회고해보면, 한국 영화를 보려면 자막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 영화에 자막이 있으면 장애가 없는 이들이 화면을 가린다고 불편해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던것 같다.

그리고 몇 해전 미국의 Regal Entertainment Group이 청각장애인을 위한 특수 안경을 대여하기로 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이 안경은 일반 영화를 보면서 안경 렌즈 상에 자막을 띄워서 미착용자는 자막없이 스크린을 보고, 착용자는 스크린을 보며 안경에 뜨는 자막을 읽을 수 있도록 하여 영화 관람에 대한 접근성을 대폭 늘린 것이다.

생각의 한계, 자기가 가진 지식의 한계가 이러한 일을 만들지 못할 뿐이다.

웹 접근성을 준수하려면 이런 저런 것들을 대체할 수단을 마련해야 하는데 자신이 가진 지식의 한계와 자신이 할 수 없음을 정당화 하기 위한 합리화의 산물이 오히려 상대방을 향해 찌르는 칼로 나간것이 아닐까?

웹 퍼블리셔가 인권운동가는 아니겠지만, 인권 운동을 할 수도 있다.

글의 서두에 언급했던 아티클에서 내가 한 행위를 두고 장애인 인권 보호에 앞장 선 사람들처럼 얘기하고 돌아다니는 오지랖 놀이에 빠졌다고 표현하고 있다.

얼마나 삐딱하게 보고 싶어서 그런지는 내 알바가 아니지만, 웹 퍼블리셔가 인권운동가가 아닌 것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웹 퍼블리셔가 인권 운동을 할 수 있고, 어느 웹 퍼블리셔는 인권운동가일 수도 있다..

자신이 장애인의 위치에 있지 않으니 그런 말을 쉽게 내뱉는 것이겟지만, 과연 자신이 반대의 위치에 있다면 역차별이니 오지랖이라느니 인권운동가라느니 그러한 이야기들을 쉽게 내뱉을 수 있을까?

역차별이 나쁜가?

일전에 비정상회담에서 역차별에 대한 토론이 아주 잠깐 이루어진적이 있다.

당시 기욤이나 오헬리엉은 이미 존재하는 차별을 없애기 위해 역차별을 통해 평등에 가까워지도록 역차별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역차별이 성립이 되기 위해서는 두 군 사이가 어느 정도 동등한 수준에 머물러야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과연 한국에서의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장치가 역차별을 운운할 만큼 잘 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노블리스 오블리주. 이것이 약자를 위해 스스로 자신을 역차별로 집어 넣는 것이 아닐까?